안정적인 대기업 직장을 스스로 내려놓고 낯선 나라에서 새 출발을 한다는 것,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30대 중반에, 영어권 대학원에 도전하면서 말이죠. 오늘 소개할 분은 현대자동차 IT 기획팀에서 6년을 근무하다 과감히 퇴사하고,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스타트업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자리 잡기까지의 5년을 기록한 분입니다.
현대자동차 6년, 그리고 찾아온 회의감
그는 현대자동차 IT 기획팀에서 6년간 근무했습니다. 누가 봐도 탄탄한 커리어였지만, 내부에서 느끼는 현실은 달랐습니다. 한국 대기업 특유의 경직된 개발 문화, 빠르게 변하는 기술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는 업무 방식이 점점 그를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AI와 로봇 공학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지금 자리에서는 그 꿈을 펼치기 어렵다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결국 그는 30대 중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미국 유학을 결심합니다. 주변에서는 만류하는 시선도 있었겠지만, 그는 '지금 아니면 영영 못 한다'는 마음으로 짐을 쌌습니다. 안정보다 성장을, 익숙함보다 도전을 선택한 순간이었습니다.
대학원 첫 학기, 3과목 중 2과목 낙제
미국 대학원 생활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첫 학기에 수강한 3과목 중 무려 2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영어 강의 환경, 한국과는 전혀 다른 학업 방식, 그리고 수년간 현업에 있다가 다시 학생으로 돌아온 낯섦이 한꺼번에 밀려온 결과였습니다. 누구라도 이 시점에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첫 학기에 3과목 중 2과목을 낙제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 실패가 오히려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로봇 축구 연구실에 합류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연구실에서의 활동은 단순한 학업 보충이 아니라, 그가 그토록 원하던 AI와 로봇 공학의 세계에 직접 발을 담그는 경험이었습니다.
로봇 축구 세계 대회 2위, 그리고 NIW 영주권의 발판
로봇 축구 연구실에서의 활동은 눈부신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팀과 함께 세계 대회에 출전해 2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룬 것입니다. 이 성과는 단순한 수상 경력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미국 영주권 취득 방식 중 하나인 NIW(National Interest Waiver), 즉 미국 국익 기여자로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실질적인 근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NIW는 미국 사회에 특별한 기여를 할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하는 까다로운 영주권 경로입니다. 세계 수준의 로봇 대회 입상 경력은 그 입증 자료로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졌고, 그는 대학원 재학 중에 영주권 신청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낙제로 시작한 대학원 생활이 세계 대회 입상과 영주권 신청으로 이어진 극적인 반전이었습니다.
졸업 후 3.5개월, 취업 준비의 현실
석사 학위를 손에 쥐었다고 해서 취업이 바로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졸업 후 무려 3.5개월간의 취업 준비 기간이 이어졌습니다. 미국 취업 시장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원하는 직무에 지원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한 과정입니다. 비자 스폰서 문제, 경쟁자들과의 기술 격차, 면접 탈락의 반복 등 크고 작은 좌절이 쌓여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끝에 그가 입사한 곳은 SK 에코플랜트 미국 법인이었습니다. 직함은 IT 관리직(PIM, Product Information Management)으로, 한국계 대기업의 미국 법인이라는 점에서 언어와 문화적 장벽은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3.5개월의 긴 기다림 끝에 얻은 자리인 만큼, 처음에는 안도감이 컸을 것입니다.
SK 에코플랜트에서 다시 느낀 한계
하지만 SK 에코플랜트에서의 업무는 그가 기대했던 것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시스템을 직접 설계하고 개발하는 역할보다는 단순 반복적인 IT 관리 업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로봇 엔지니어를 꿈꾸며 대학원까지 다녀온 그에게, 이 업무는 성장의 한계가 명확하게 느껴지는 자리였습니다.
현대자동차를 떠난 이유와 비슷한 답답함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더 늦기 전에 진짜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미국까지 와서 이 정도에 안주할 수 없다는 다짐이 그를 또 한 번 움직이게 했습니다.
지인 추천 한 통으로 바뀐 커리어, AptAmigo
이직의 계기는 뜻밖에도 지인의 추천이었습니다. 미국 부동산 플랫폼 스타트업인 AptAmigo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AptAmigo는 아파트 임대 과정을 디지털로 연결해주는 플랫폼으로, 그가 합류할 당시 직원 수는 불과 5명 수준의 초기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지금은 50명 이상으로 성장한 이 회사에서,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직접 시스템을 설계하고 코드를 작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작은 팀에서 한 사람이 담당하는 범위가 넓은 만큼, 빠르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내가 만든 것이 실제로 돌아가는' 경험을 드디어 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 대기업 vs 미국 스타트업, 문화의 차이
그가 체감한 한국 대기업과 미국 스타트업의 가장 큰 차이는 '속도'와 '책임감'이었습니다. 미국 스타트업에서는 애자일(Agile) 방식으로 빠르게 개발하고, 빠르게 피드백을 받으며, 빠르게 수정합니다. 의사결정 단계가 짧고, 개인이 프로젝트에 미치는 영향이 직접적으로 느껴집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높은 책임감이 요구됩니다.
한국 대기업에서는 내가 한 일이 어디에 쓰이는지 잘 몰랐습니다. 여기서는 내가 만든 기능이 바로 다음 날 사용자에게 전달됩니다. 그 차이가 엄청납니다.
복지 면에서도 차이가 뚜렷합니다. AptAmigo는 100%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며, 무제한 유급 휴가 정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제한 유급 휴가가 실제로 자유롭게 쓰이려면 팀 문화와 업무 성과가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제도 자체가 주는 심리적 여유는 분명히 다르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돈보다 과정, 그가 추구하는 삶의 철학
5년간의 여정을 돌아보며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과정을 즐기는 삶'입니다. 연봉이나 직함만을 목표로 달리다 보면, 정작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지 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성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끊임없이 성장하는 삶을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현대자동차 퇴사, 대학원 낙제, 취업 실패, 이직의 반복처럼 보이는 그의 여정은 사실 매 순간 더 나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화려한 스펙보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조금씩 나아간 결과, 지금의 자리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30대 중반에 대기업을 나와 외국에서 새 출발을 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늦었다'는 말이 얼마나 상대적인지를 보여줍니다. 낙제도, 긴 취업 공백도, 맞지 않는 직장도 결국 더 맞는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미국 취업이나 이민을 고민하는 분들, 혹은 지금의 커리어에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께 이 이야기가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완벽한 준비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한 발 내딛는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